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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가 바이러스를 옮기는 이유
박쥐는 코로나 19를 비롯해 2003년 중국을 덮친 사스(SARS)와 2014년 에볼라, 2012~2015년 중동과 한국을 휩쓴 메르스(MERS) 등 21세기의 주요 감염병을 일으킨 바이러스의 근원으로 꼽힙니다.
사스는 관박쥐가 원인이고, 에볼라는 과일박쥐라 불리는 큰 박쥐류, 메르스는 이집트 무덤 박쥐가 주요 감염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쥐, 바이러스의 온상?
박쥐는 전 세계적으로 약 1000 종이 분포해 있을 정도로 종이 다양하다 보니 다양한 질병과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 또한 뛰어납니다.
특히 박쥐는 몸에 다양한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하더라도 생존하는 능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면모를 보여줍니다.
박쥐류는 156종의 인수 공통 바이러스(동물과 사람 사이에 상호 전파되는 병원체)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83종을 지닌 설치류 다음으로 많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설치류는 쥐, 다람쥐, 청솔모, 햄스터 등 포유류의 한 목으로 포유류의 목 중에서 가장 많은 생물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크든 작든 부작용이 일어나는 반면, 박쥐가 바이러스를 몸에 많이 지니고도 무사할 수 있는 것은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염증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독특한 면역 체계 때문입니다.
인간은 바이러스 등 병원체가 침입하면 체온을 올려 고온에 취약한 바이러스 활동을 막기 위해 면역체계가 작동하는데, 생존을 위한 필수 반응이지만, 우리 몸도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하지만 박쥐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보통은 체온을 올리는 염증 반응을 일으키지 않으며, 바이러스를 죽이지 않습니다.
바이러스도 박쥐를 죽이지 않고 있다가 다른 동물에게 옮겨가 번식하는 일종의 공생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에볼라 등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항체를 갖고 있는 박쥐도 발견되곤 합니다.
박쥐가 바이러스에 강한 또 다른 이유는 장거리를 날아가는 특성 때문으로, 박쥐는 밤에 최대 350km 이상을 비행할 수 있습니다.
장거리 비행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신진대사율과 체온이 올라가게 되는데, 박쥐는 비행 중에 체온이 40℃ 이상 상승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발열은 그 자체로 면역 반응이므로 바이러스를 막는 데 도움이 됩니다.
더불어 신진대사율이 증가하면 DNA를 손상시키는 활성산소가 생성되는데 박쥐는 손상된 DNA를 복구하는 시스템도 발달해 있습니다.
그야말로 자신의 삶과 환경에 맞추어 적응하다 보니 강력한 항바이러스 체계를 오랜 세월에 걸쳐 갖추게 된 것으로, 박쥐가 지금처럼 다양한 종으로 분화한 5천만 년 동안 박쥐는 바이러스를 완벽히 제거하기보다는 바이러스가 있어도 영향받지 않는 쪽으로 진화를 거듭한 결과입니다.
박쥐에게 기생하는 모든 바이러스가 모두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바이러스의 대부분은 사람에게는 옮겨가지 않아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사람에게도 옮을 수 있는 인수공통 바이러스가 되는데, 사스부터 에볼라, 메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모두 이에 해당합니다.
박쥐는 '바이러스 저장소' 불명예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 해충을 잡아먹고 사람과 멀리 떨어져 사는 등 인류에 직접 피해를 끼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최근 박쥐가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문제로 인식하게 된 결정적 요인은 사람이 자초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서식지가 파괴되고 먹이가 없어지자 박쥐는 점차 사람이 사는 곳까지 드나들며 경작지나 과수원의 곤충과 과일을 먹게 되면서 인간과 접촉이 늘어났고,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를 옮기게 된 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박쥐를 한약재나 식재료로 사용하는 일부 식문화는 박쥐 속 바이러스와 인간의 직접적인 접촉을 늘리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사실 일반인이 일상생활에서 박쥐를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일생동안 박쥐를 보지 못한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박쥐는 야생 성인 데다 사는 곳도 사람이 밀집해 살고 있는 곳과는 동떨어진 동굴이나 폐광에 살며 1년 중 길게는 절반 이상을 겨울잠으로 보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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